★★【세월호】극악무도한 학살만행 정황◆

인생 70에 아직도 세월호의 잔혹한 학살만행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하다.꽃다운 학생 수백명을 ‘기다려라 가만 있으라’ 는 속임수로, 살려줄듯 배안에가둬놓고 산채로 수장시키다니, 여기가 늙은 악마의 소굴이더냐 지옥중의 아비규환이더냐. 구명조끼 입고 탈출하라 했다면 용수철 같은 젊디 젊은 애들이그렇게 피를 토하도록 처참히 죽었겠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 숨쉬는 한나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어 세월호의 천인공노할 학살만행을 쓰고 또 쓴다. 전속력 원형 항해는 방향타의 고장이고, 꺼버린 CCTV는 정전 때문이며국정원 문건은 죽은 직원이 작성한 것이기에 모른다면 그뿐인 무법천지였다.세월호는 전복된게 아니라 넘어뜨린 것이고, 침몰된게 아니라 가라앉힌 것이다.그리고 수습을 위해 인양한게 아니라, 인양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만행의막후세력이 서둘러 건져올린 것이다. 여럿이 꼼짝 못하게 움켜잡고 비닐봉지씌워 질식시시킨 범인들이 타살 흔적과 증거가 어딨냐며 비아냥대는 꼴이다. 침몰 원인을 엉뚱하게 잡으면 곁에 있는 만행의 증거는 밟고 지나게 된다.전복의 수단은 평형수와 화물적재에 있음이 명백하고, 키맨(keyman)은 그날평형수와 화물적재를 총괄한 승무원이며, 참시 당일의 평형수와 화물적재를총괄한 승무원은 신정훈이다. 그는 그날 첫 승선한 1등 항해시며, 선장 부재시1항시는 선장을 대행한다는 법 조항을 그날 변경했고, 바지선장 이준석은무슨 일로 태산같은 직무유기를 뒤집어 쓴 채 팬티차림 탈출을 했겠는가? “기다려라 가만 있으라”를 거듭할 때, 가만 있으면 죽는다며 주위의 학생들을이끌고 탈출한 교감께선, 이튿날 하늘이 무너지는 죄책감에 겨워 자살하셨다.가만 있으면 죽는다는 시실을 교감만 알고 항해시와 선원들은 몰랐단 말이더냐.구명조끼 입고 탈출하라 했다면 피끓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죽었겠냔 말이다.시체장시에 종북좌빨의 올가미까지 들이댄 힘자와 그 부역자들을 떠올리면아직도 살점이 떨린다. 많이 죽일수록 더 큰 성과란 적개심이 아니고서야….. 2014년 4월 15일(세월호 시고 전날)엔 어떤일이 있었나?  1. 선장 대신 1등 항해시가 선장노릇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  2. 단원고의 승선계약이 오하나마호에서 세월호로 바뀜.  3. 서울 면목고 학생들의 세월호 승선계약이 취소됨.      (서울도심 항의집회를 막기위한 조치?)  4. 세월호 선장이 갑자기 휴가를 내 교체됨. 1등 항해시 신정훈 입시.      (깐깐선장 휴가/바지선장 승선/1항시 만행주도?)  5. 짙은 밤안개로, 인천항 출발예정 선박 10척중 세월호만 출항.      (밤안개 따위가 감히 국정원의 뜻을 막겠는가?) 추측되는 세월호 학살만행 계획.  1. 왼쪽으로 넘어뜨릴 계획을 세움.  2. 왼쪽 평형수 탱크를 비우고, 그쪽 상부에 철근을 적재해 평형유지.  3. 작전타임에 이르러 비워뒀던 왼쪽 탱크를 채우고 오른쪽을 비움.      버턴 작동으로 삽시간에 조치 가능하며, 선체는 졸지에 기움.   4. 상부의 철근과 화물이 가쪽으로 쏠림. 전복과 동시 복원력 차단.      철근과 화물이 가쪽으로 쏠리면 수천톤의 무게로 작용. 법정에서의 승무원들 쑈에 울화가 치민다. “어, 안 돼! 조타기가 안 돼요!”조타기 고장? 웃긴다 정말! 오른쪽 스크류가 드러날 정도로 선체가 기운 상황이었는데, 기운 반대쪽으로 전속력/전타라면 어촌마을 통통배 선장도 웃다가넘어진다. 방향타가 고장인데도 전속력은 풀지 않았단 말이더냐? 전복 목적외다른 이유를 들이댄다면 어불성설이 되고, 평형수의 조절과 비중 높은 화물의적재위치와 방법과 량으로 빚은 요지부동의 잔혹한 학살만행이었다.    그날 8시 46분이면 만행을 개시한지 1시간 이상 지난 시각이다. 비워두었던   왼쪽의 평형수 탱크를 채우고 오른쪽을 배수한 후에 일어날 급격한 기울기에   상부의 비중높은 철근을 포함한 화물들이 예상과 달리 가쪽으로 솔리지 않아   전복과 복원력 차단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았고, 침수도 진행되지 않았다.   키맨은 1시간 가량의 집요한 모색 끝에 전속력/우측전타를 결행했고, 이는   원심력에 의한 화물의 좌측 쏠림을 꾀한 조치였다.     선장 대신 1항시가 선장노릇 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시고 전날 바뀌었고   신정훈(1항시)은 그날 첫 승선하여 평형수와 화물적재를 총괄했으며, 탈출 뒤   세월호의 복원력 문제를 한눈에 통찰한 천재성(?)을 보였다. 팬티차림으로   허둥지둥 탈출하던 선장은 인시불성으로 지냈다고 봐야 옳고, 탈출후 해경   아파트에 하루 동안 묵게한 배후세력은 누구며, 도대체 뭘 하며 지냈겠는가?   키맨(신정훈)은 시고직후 어디론가 휴대폰으로 5통 전화를 했고…..    열려 있었던 램프, 제거되고 없는 앵카, 실수와 고장을 가장한 전속력/전타!   전복 후, 오른쪽 평형수 탱크를 채울 수 있었던 인위적 조치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 가라앉을 즈음 선체 하부 곳곳에선 공기주머니에 물이 차며 빠져나오던   줄이은 공기압의 분출이 있었고, 이것은 인위적 파공이 명백하며, 헬기에서   쏜 철갑탄의 관통구가 아니라면 절대로 설명이 불가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 명료하다. 가라앉아야만 만행이 종료되기 때문이었다.      전복되어 복원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승객의 살길이라곤 오로지 탈출하는 것   뿐이었건만 “기다려라 가만 있으라”를 10여차례 거듭 방송했다니 숨이 막힌다.   통영함 구조투입 의시를 우격다짐으로 저지당한 황기철 해참총장은 군령을   어기면서까지 가슴에 세월호 리본을 달았고, 끝내 광제로 전역 당했음은 물론   구속의 치욕을 맛봐야 했다. 많이 죽여야 크게 쑈킹하고 그래야만 불거지는   대권찬탈을 덮을 수 있다는 극악무도함에 천인이 공노하고 있거늘, 수박의   겉은 커녕 이파리 핥고 자빠진 보도에 억장이 무너지고 복장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