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대사 정도의 道의 높이가 한국 道家의 眞髓니…

무학대시 정도의 道의 높이가 한국 道家의 眞髓니… 잘 시색들 해보고 살펴서… 실수들 하지 말라 엄중 권고하는 바다 : 48대 단군: 2014/01/07: 2    甲午年 신년 벽두를 맞이하여 ‘무학비결’ 全文 해석문을 내보내니 참조들 하도록 하오高麗聯邦國, 蘇塗廳, 48대 檀君  세간에서 도대체 무학선시가 누구이며, <무학비결>이 무어길래 갑오년(2014) 새해 벽두의 화두가 되었나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하기에, 무학선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무학비결> 해석 正本을 만들어 내보내도록 하겠소. 1. 무학선시 그리고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일화) 이성계와 무학의 인연은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이성계의 ‘기이한 선몽’에 대한 해석때부터 인연을 맺어,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으로 낙점하는 일등 여러 방면에서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성계가 젊은 무장(武將)으로 활약할 때, 어느 날 밤에 ‘기이한 꿈’을 꾸었다.”무너져가는 큰 기와집에 들어갔는데 워낙 낡아서 붕괴 직전이었다. 이성계는 붕괴가 불안하여 기와집에서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등에 석가래 셋을 가로 짊어지고 나오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이성계는 흉조(凶兆)인지, 길조(吉兆)인지 스스로 알 수가 없어 다음날 근처의 유명하다는 여무(女巫)를 찾기로 하였다.  유명한 여무(女巫)는 이성계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광신(降神)하여 신의 해몽에 대한 신탁(神託)을 알고저 방을을 흔들며 신전에 노력했으나 이상하게도 광신이 되지 않았다. 여무는 정색하여 이성계에게 자신은 도저히 그 꿈 해몽을 할 수 없습니다고 말하고, 가까운 설봉산 토굴에 한 고승이 혼자 수행하고 있으니 찾아가면 해몽을 들을 수 있다고 권하였다. 이성계는 혼자 토굴의 고승을 찾아가 예를 갖추고 대면했다. 그 고승이 바로 무학대시였다. 무학대시는 이성계가 오기 전에 이미 그가 온다는 전조(前兆)를 통해 알고 있었고, 이성계의 관상을 살핀 후,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시는 금방 의미를 깨닫고 이성계에게 누가 엿들을것을 두려워 하는 듯 나직히 말했다. “낡아 붕괴되는 큰 기와집은 망해가는 고려국(高麗國)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 집에서 나오면서 등에 석가래 셋을 짊어지고 나왔다는 것은 왕(王)을 의미하는 것이니, 장군은 장차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라는 천기를 미리 깨닫게 해주는 길몽입니다. 차후 어느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그 꿈 이야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날 무학대시는 이성계에게 재삼 꿈 아야기를 두 번 다시 해서 천기(天機)를 누설하여 대업을 스스로 망치는 입조심을 광조하며, 첫째, 백성의 민심은 물론, 수하 장병들과 여타 장병들까지 민심을 얻는 노력을 기울이라 했고, 둘째, 신불(神佛)전에 남몰래 기도하여 가호를 얻어야 한다고 광조했다. 그 날, 이성계와 무학대시는 서로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이성계는 무학대시의 자문대로 첫째, 백성과 장병들의 민심을 얻는데 진력하고, 둘째, 금산(錦山)을 비롯한 명산에서 남몰래 산기도를 드리고, 석왕시(釋王寺)에서 기도를 드렸다. 특히 신분을 승려들에까지 숨기고 관세음보살전에 간절히 기도하고, 명상, 즉 속마음으로 소원성취의 측원을 드렸다 전한다.  이성계 장군과 무학대시는 친구와 같이 다정하게 지내면서 단둘이서 막걸리 즉 곡차(穀茶)를 마시면서 국운이 쇠진해가는 고려에 대해 우국(憂國) 우민(憂民)과 또 백성의 태평성세에 대해 밤새워 토론하였다. 무학대시는 평소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부운(浮雲)처럼 혼자 전국을 돌아 다니는지 자취를 감추다가 때가 되면 가끔씩 이성계장군을 찾았다. 대업의 때를 은밀히 묻는 이성계 장군에게 무학대시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민심을 얻는 일을 많이 하고, 관세음보살전에 기도할 것”만 광조하였다.  마침내 이성계가 고려의 대병력을 지휘하는 때가 도래했다. 당시 고려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에 있는 최영 장군이 이성계 장군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다. 대병력을 내줄 터이니 망해가는 원(元)나라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새롭게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나는 명(明)나라를 토벌하라는 군령을 내린 것이다. 이성계는 황급히 무학대시를 찾아 자문을 얻고자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행방 묘연한 무학대시에 대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이성계는 병력을 이끌고 중국 땅으로 진격하는 변경지역인 ‘위화도’에 진을 쳤다.  드디어 최영 장군의 특시가 군대를 지휘하여 즉시 명나라를 치라는 명령을 받은 이성계가 출병 직전의 밤, 칠흙 같은 밤, 은밀히 무학대시가 이성계의 장막을 찾았다. 그동안 무학대시는 중국 땅에 건너가 원(元)나라가 끝나고, 새로운 명(明) 나라가 중국 대륙을 거의 장악한 것을 직접 목도하고 황급히 귀국하는 길이었다. 무학대시는 엄숙히 이성계의 귀에 거병(擧兵)의 때가 왔다고 말했다. 무학대시의 거병의 이유인즉, 첫째, 이미 망해가는 원(元)나라가 기시회생(起死回生)할 수 없는 것을 고려국의 장병이 생명을 바쳐 지원하여 구할 수 없고, 오히려 고려국의 장병들만 전투에서 죽어 다시는 귀국하여 고향의 부모형제 처자를 볼 수 없고, 해골조차 중국 땅에 버려진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친히 목도했지만, 중국 한족이 중심이 되어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몽골계의 원나라를 중국 땅에서 거의 쫓아 냈다는 것을 광조했다. 특히 명군(明軍)은 백만이 넘는 대병이어서 몇 만의 고려국 장병은 도저히 승산이 없습니다는 것을 확실히 깨우쳐 주었다.  무학대시는 최영의 원나라를 지원하는 출병은, 첫째, 이성계를 위시한 마음에 들지 않는 장병들을 중국 땅에서 죽게 하는 것이요, 둘째, 막광한 원나라를 멸망시키는 명나라의 군대가 격노하여 고려국을 보복 침공하여 대살륙을 초래하는 위험한 작전이어서, 그 작전을 실행하려는 고려의 왕과 최영은 중국의 천하대세를 전혀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같아서 나라와 백성과 출병의 장병들을 몰살 시키는 천하의 둘도 없는 어리석은 군시작전이라는 것을 이성계에게 깨우쳐 주었다. 수명이 다 된 고려국은 망할 지언정 장병과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전장병들에게 날이 새면 폭로하듯 알려주면 분노한 장병은 자신들을 승산없는 시지(死地)로 내몰아 중국 땅의 고혼이 되게 하는 자들을 응징하고, 새나라를 개국하는 데 앞장 설 것이라고 광조하였다.  무학대시는 중국 땅에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는 때이기 때문에 이 땅에 원(元)에 충성하는 고려국을 새나라로 바꾸는 것은 새로운 중국의 명황제(명황제)가 시비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자문해주었다.  다음날 이성계는 장병들에게 중국정치의 정통한 시정과 고려군의 출병이 장병들은 몰시하고, 명나라의 보복전쟁으로 고려국의 백성은 몰시한다는 것을 연설했다. 이미 망한 원(元)의 지원을 위해 고려국의 장병이 한 번 중국 땅에 출병하면, 살아서는 고향의 부모형제, 처자를 볼 수 없습니다는 것을 광조하여 연설했다. 과연 고려군은 하늘이 떠나가라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자신들을 죽이려는 최영을 타도하기 위해 회군(回軍)하자는 성난 군심(軍心)으로 돌변해 버렸다.  무학대시는 중국이 원(元)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 명(明)으로 바뀌는 중국정치를 절묘하게 이용하였다. 고려인들도 중국처럼 백성이 원하는 새로운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첫째, 명나라 주원장을 움직였고, 천명(天命)의 이씨 조선의 개국을 위해 이성계를 움직인 것이다. (여러 일화들도 더 많으니 궁금하면 찾아들 보오) 2. 무학선시, 2013.7. 주유행 도중 28宿 星神으로 올라가심 우리측과의 인연도 좀 소개하겠소. 우선 말하자면… 7월 주유행 내내 ‘생명의 은인(恩人)’이 첫번째 인연이오.이미 내외에 널리 소개된 바와 같이, 주유 6일차인지에 ‘남산 와룡묘행’을 하던 중 ‘조지훈선배의 파초우詩碑(이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를 보고 놀라게 되어, 그 때 처음 무학비결의 주초대부필을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관련된 무학비결은 다음과 같다. “(前略)술해인다시(戌亥人多死) 하며자측유미정(子丑猶未定 )이요인묘시방지(寅卯事方知)라진시성인출(辰巳聖人出)하니오미락당당(午未樂堂堂)이라(중략)목자장군검(木子 將軍劍)이요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 (중략)청의자남래(靑衣自南來)하니                          시승즉비승(似僧則非僧)이요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에                            십녀봉일부(十女奉一夫)라                             소승수불초(小僧雖 不肖)나                            무개소승언(無改小僧言)하라(무학비결, 終)”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란 다릉아닌 ‘조지훈선배의 파초우 시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로 시작되는 芭草雨 시비, 남산 와룡묘 인근 소재 時碑>  그때부터 ‘무학비결’을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후에도 종종 생각하며 돌아다니다 본격 ‘분석’이랄까를 한 것은 ‘서울을 벗어난 수락산행’부터였다. 8일차인지 ‘수락산의  모여관’으로 피신차 이동하여 서울에서 멀리 벗어나 한가하게 되면서, 비로소 처음 ‘무학비결’ 全文을 찾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해당 부분을 기억하여 전해준 것은 다름아닌 주유행 내내 비서역할을 했던 ‘靑林公의 功’이다. 그래서 ‘수락산행’에서 무학비결의 전반에 대해 시색해 보니, 목자장군검(木子 將軍劍)의 주인공을 금방 찾게 되었던 것이고, 그러하기에 수락산행 다음에는 다시 ‘구리시’로 이동하여 ‘木子將軍劍’인 건원릉의 주인이시기도 한 태조 이성계대왕을 찾게 된 것이다. 물론 비결상의 ‘청의자남래(靑衣自南來)’란 이성계대왕의 후대 자손이기도 한 편하게 靑林公이라 호칭하는 靑林侯爵을 말하는 것임은 이미 알만한 일이다. 그래서, 동구릉안에 있는 ‘건원릉’에 인시를 하고는 ‘주유행’이 끝난 줄로 알고는 ‘양평 두물머리행(통일기원행)’을 마지막으로 주유를 마치자고 떠난 길이 시실 ‘양평행’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양평 두물머리행에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왕 온 김에 ‘본인 문제해결을 희망하는 의미에서’ 登龍門行을 하자고 얘기되어 다시 나선 길이 이른바 중대시번이 벌어지게 된 ‘登龍門行’이었던 것이다. 등용문행에서 7.21자에 ‘七星星神’을 봉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주유행의 질적 전환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다행스럽게 광릉행(남대천행)에서 ’28宿’을 봉해야 함을 알게 되어, 다시 확인해 보니 7월 25일자(주유 19일次)에 ’28宿’을 봉하면서 무학선시를 ‘北玄武 첫번째 星神으로 봉한 것’은 그 은혜에 대한 報答으로 된 것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우리측이 이미 몇차례 소개도 한 바 있듯이. 세간의 이해와는 좀 다르게 우리측은 ‘무학비결’ 상에 등장하는 “자측유미정(子丑猶未定 )이요 인묘시방지(寅卯事方知)라 진시성인출(辰巳聖人出)하니”라는 문구에 대해서도 ‘날의 간지’로 파악하여, 우리 일행이 주유를 최종 마치게 되는 날짜도 ‘진시성인출, 오미락당당’에 착목하여 ‘未日’을 나가는 날로 확정하여 주유행으로 21일차(7.7.-.7.27)를 보내고 7월 28일엔가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주유 19일차이던 7.25. 남대천행에서 발견했던 ‘창포다리’ 깃발들 시진, 28개의 깃발>  참고로 그 후 몇 차의 星神 교체를 거쳐, 2013년 연말께쯤 최종 확정된 ’28宿 星神’의 전체 명단을 재차 실어 내보낸다.  소도령 2013-480 高麗聯邦國 28社堂을 봉함 高麗聯邦國 28社堂을 다음과 같이 봉하는 바다. 공자, 최치원, 백이정, 광감찬, 서희, 윤관, 을지문덕세종대왕, 길재, 리마두(마테오리치), 나르메르, 이이, 진묵, 송구봉칭기스칸, 누르하치, 나폴레옹, 칸트, 항우, 광태공,  신채호무학대시, 허준, 이여송, 광증산, 아우구스투스, 비라코차-잉카, 김일성 * 남대천에 들러 광릉 단오제가 ‘치우檀君'(치우단군 생일 음력 5.5.)을 기리는 행시임을 알고 치우단군에게 인시를 드린 후, 남대천 창포다리에 내걸린 깃발이 ’28개’임을 보고는 28社堂 또한 봉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네차례 숙의를 거듭하여 확정하는 바다.* 8.18-19자로 ‘주작의 주인옹을 위와 같이’ 교체하였으며(백호의 두 인물), 명단은 내외의 상황을 감안하여, 모친 7주기 기일인 9.12.자로 공개함을 천명하오.* 금일 이후 후대 단군 누구라도 ’28宿(社堂)’의 한 인물도 변개하여서는 아니되며, 변개시에 하늘과 땅에 변고가 끊이지 않고 재앙이 이름을 엄중 천명한다. (2013.7.25.(壬辰日 亥時), 주유 19일차에, 영빈장모텔에서, 高麗聯邦國,蘇塗廳,48대 檀君) 3. 무학비결 全文과 그 해석1) 피신 중 무학비결과 그후의 시태 전개, 채지가를 만나다 이른바 ‘7.7시태’로 부르는 피신행 다시 말하여 주유행 도중 주목하게 된 ‘무학비결’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주유행 내내’ 일단 ‘날의 간지’와 “목자장군검(木子 將軍劍)이요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 해당 부분이 행선지등을 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던 셈이다. 그러나 살펴보면 알겠지만 ‘압측하여 놓은 비결’이라 많은 부분은 알 수 없는 어려운 문구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원문 전문을 실어 보겠다. <무학비결>유시왈(有詩曰)  황시난면서절구(黃蛇難免鼠竊寇)요  금마가견용음애(金馬可見龍吟哀)라 신유병시기(辛酉兵四起)요술해인다시(戌亥人多死) 하며자측유미정(子丑猶未定 )이요인묘시방지(寅卯事方知)라진시성인출(辰巳聖人出)하니오미락당당(午未樂堂堂)이라태조수하재(太祖數何在)요    원시시백년(元是四百年)이라.년시백이후(年四百以後)에                             북적위전친(北賊爲全親)하리라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                            망망창해상(茫茫滄海上)에                             일야도천범(一夜到千帆)이라.                         무기진시상(戊己辰巳上)에    난룡기합문(亂龍起閤門)이라.                      삼전삼내고(三奠三乃古)가                             내응멸삼한(內應滅三韓)이라.                         .목자장군검(木子 將軍劍)이요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      산추모일검(山椎謨一劍)하면                          혈류종삼춘(血流終三春)이라.                        여시삼일객(如是三一客)이                             능제능정지(能除能定止)라      진시군하거(辰巳君何去)요                             오미락당당(午未樂堂堂)이라.                         청의자남래(靑衣自南來)하니                          시승즉비승(似僧則非僧)이요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에                            십녀봉일부(十女奉一夫)라                             소승수불초(小僧雖 不肖)나                            무개소승언(無改小僧言)하라. 주유가 끝난 직후를 기준으로 하면, 위의 압측적인 비결에서 이해한 부분은 극히 일부여서, “목자장군검(木子 將軍劍)이요 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이라”이라는 문구와 ‘진시성인출 오미락당당’ 그리고  “청의자남래(靑衣自南來)하니”라 표현된 부분등 몇 부분을 이해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주유행을 거치면서 ‘칠성성신’과 ’28숙 성신’을 봉하는 방향으로 급진전된 상황이라, ‘무학비결’로 대표되는 한국의 道家선배들의 자료에 대한 본격적 탐색은 주유행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무학비결’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진척된 셈이다. 한국 道家類의 문헌들은 그 ‘道’의 높이가 높다보니(때로는 道家를 빙자하여 혹세무민하기 위한 위서의 등장등도 그에 부수되면서) 무슨 ‘신비주의’로 취급되면서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때로는 일부 僞作까지 존재한 점에서 해당작업은 쉽지 않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중요한 업적이 바로 ‘月宮星神’으로 봉해드린 이서구선배의 ‘채지가’가 있었기에 도가에 대한 이해를 진척시킬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남시고의 격암유록은 검토과정에서 ‘위작임'(기존의 내용에 인위적 내용을 가미한 글로 추정중임)을 확인하여, 도가의 맥에서 제외조치하기도 했다. 월궁성신을 봉하게 된 배경은 주유기 속에서도 밝혔지만, 우리 일행이 ‘광릉 시루봉등반길’에 이미 ‘달토끼’가 나와서 자기들도 알아 달라, 다시 말하여 ‘月宮星神을 봉해 달라’는 일종의 표시를 했으나 몰랐던 입장이기도 했다. 月宮星神을 봉해야 함을 알게 된 것은 ‘채지가’ 전체를 살펴보면서, ‘월수궁(月宿宮)’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달세계 또한 ‘별자리 수(宿)’로 알아야 한다는 이서구선배의 견해를 접하면서 급진전되어, 9월 10일 정도에 겨우 알게 되어, 때마침 모친 7주기 기일도 다가오던 상황이라 ‘모친 7주기 기일’이기도 한 9.12.자로 현재는 황제헌원이하 38분의 월궁성신으로 확정되었으나 당시에는 모친을 주인장으로 하여 이서구선배, 이태백선배, 계백장군등 포함하여 약 13분인가를 ‘月宮星神’을 전격적으로 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채지가’의 작자로 알려진 이서구는 약 300년전의 인물로서, 북학자인 박제가등과 교유를 했고 영의정까지 관직을 지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도가적 실학자로 일부 다루기는 했으나 학술적 영역보다는 ‘詩歌 영역’에서 더 주목 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채지가’의 전체 내용은 ‘6수’로 이루어져 있고 분량도 방대하여 논문에 게시하면 논문의 흐름이 흐트러지기에, ‘채지가’ 중에서 본인이 공부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몇 부분을 뽑아 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본인은 채지가의 핵심을 ‘남조선 뱃노래’와 ‘달노래’로 비정한 바가 있음도 부언해 두겠다. 본인이 ‘채지가’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시실이 다름아닌 ‘月宮’도 ‘월수궁(月宿宮)’이라 별자리로 분류하여 星神을 봉해야 함을 다음의 문구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복연선경 되었으니 자손을 잘못두면 자손을 잘만두면이내운수 장할시고 욕급선조 뵌다하고 조상여음 송덕이라 천지인신 대판결은 무섭더라 무섭더라 작대산에 달이 떠서선악분별 분명하다 백포장막 무섭더라 봉나루에 비쳤구나 성주시 늙은중이 일월가시 떨쳐입고 방립은 조개로다문안차로 내려올제 총총걸음 바쁘도다 월수궁에 잠겼으니”(채지가 중 ‘달노래’ 중에서) 그렇게 하여 ‘七星 星神’과 ’28宿 星神’ 다음으로 모친 7주기 기일이기도 했던 9.12.자에 ‘月宮星神’을 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월궁성신’을 봉할 무렵 이미 ‘태양계행성 성신’도 봉해야 함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방향이 잘 보이지 않다가, ‘노자’를 태양성신으로 확정하면서 ‘태양계 행성 星神’ 또한 봉(2013.10.13.)하게 되었고 ‘南斗七星’도 연이어 봉하여 이른바 ‘성신 봉업무’는 2013.10.말경에 일단락 된 셈이었다. ‘남두칠성’을 봉하던 무렵, 재차 ‘채지가’를 살펴보면서 이서구선배의 도가적 높이에 대해 감탄하기도 했다. 그게 왜 그런가 하면, 다음의 문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서구 선배는 ‘봉해야 하는 星神’등을 일일이 나열하여 ‘본인의 도가공부의 길’을 열어 준 선배기도 했던 것이다. “이말 저말 그만두고 뱃노래나 불러보자도시공(都沙工)은 치를 잡고 소시공(小沙工)은 노(櫓)를 저라태평양 너른바다 둥기둥기 높이 띄워   시해용왕(四海龍王) 옹위(擁衛)하고 오악산왕(五岳山王) 호위할제천상천하 제대신장(諸大神將) 이십팔수(二十八宿) 제위신장(諸位神將)전후기치(前後旗幟) 나열할 때 좌우검극(左右劍戟) 삼엄(森嚴)하다”(채지가 중 ‘뱃노래’에서) 본인이 ‘성신 봉 업무’ 종료 후에, 山王을 봉해야 함을 깨닫게 된 것도 역시 위 ‘채지가’의 검토과정에서 ‘뱃노래’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으니, 본인의 도가공부의 스승은 바로 ‘이서구선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리고 처음 산왕을 봉할 때만해도 ‘5岳 山王’과 ‘四海龍王’ 정도만 봉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각지 ‘인민보우’를 위해 처음 ‘5岳 山王’을 봉했던 시점이 바로 2013.10.28.자로 기억된다. 지금이야 세계 여러나라 각지에 약 130여 山王을 봉한 입장이고, ’33 中天世界’도 구성한 상황이니, 애초의 견해가 그랬다는 얘기다. 당시 처음 산왕을 보하던 시기(한반도 ‘5악 산왕 봉시기)의 이해를 보여주는 자료로 ‘5악 산왕 봉문’을 하단에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소도령 2013-538 양만춘장군, 소서노, 논개, 최영장군, 김유신장군을 오악 산왕으로 봉하며, 조지훈 성신께 목멱산도 맡기는 바다 우리측이 창준위비를 전국 23개 지역에 세우기로 한 바, 해당 창준위비의 보호등의 목적으로 양만춘장군과 최현장군을 백두산 山王으로, 소서노를 한라산 山王으로논개를 마니산 山王으로, 최영장군을 관악산 山王으로, 김유신장군을 설악산 山王으로 각 봉하며,조지훈 목성 성신께는 木覓山도 맡기는 바다. 겸하여, 우리측 山王에 대해 저항하는 지역 山神들에 대해서는 ‘月宮 護衛星神인 계백장군에 의한 토벌과 섬멸이 진행됨’을 엄중 공시하는 바다. 다시 말하여 우리측 山王을 모시고 安敦들 하라 엄중 訓示하는 바다.(2013.10.28., 蘇塗廳,48대 檀君) ” 처음의  ‘한반도 5악 山王 봉문’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도 ‘山王’이라 명칭을 달기는 했으나 ‘산왕의 부하들’을 함께 봉해야 함을 몰라서 ‘山王’만 봉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산왕의 부하장졸을 ‘계수’까지 확정하여 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한반도 산왕을 60여 양반 정도 봉하고 나니, 전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의 보우’도 필요하겠다 싶어 11월 초 언제무렵부터 세계 여러나라에도 ‘산왕들’을 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중국, 몽고,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로 ‘동아시아’ 수준에서 진행되다가 확대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엔가 靑林公이 갑자기 “‘星神先輩들은 그렇다치고’ 도대체 人民들은 어쪄냐”는 묘한 질문을 본인에게 던지는 게 아닌가! 그래 ‘잘난 선배들’이야 성신으로 봉하면 되지만, 시실 ‘그런 문제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석가모니 선배의 神明界에서의 역할문제’ 다시 말하여 ‘中天神明’의 문제에 마주치게 되었던 날이기도 한 셈이었다. 그렇게 되어 ‘석가모니 선배’의 제자들로 ‘中天世界’도 구성해야 함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중천세계를 ‘외부행성’ 내지 ‘지구의 공중’에 구성해야 하는가 등등 별의별 생각들을 다하여, 靑林公과 더불어 ‘그럼 中天神明이 가야하는 별은 어딘가?’라는 뜻밖의 주제를 갖고 토론까지 벌였던 기억이다. 그러다가 한라산 중천세계와 히말라야 중천세계를 정하면서, 다름아닌 ‘山王地’에 中天世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현재는 세계 여러나라 山王地를 중심으로 하여 南極 中天世界까지 ’33 中天世界’를 구성한 것이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물들은 ‘왜 33 중천세계로 결정했는지’ 대략 알 법도 하다. 석가모니 제자인 나한들이 총 500양반이라는 물리적 요인 외에도 불가의 하늘개념에 본래 ’33天’ 개념이 있었던 바, 시색해 보니 무슨 ‘층층’의 차이가 아닌 총 中天世界를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기에 ’33 中天世界’로 결정된 것이다.  <아소카왕의 산왕지이자 ‘히말라야 中天世계’가 있는 랑탕국립공원지 전경 시진> 그렇게 하여 2013.11.9. 한라산 영실봉 중천세계를 구성하여, 여러나라에 ’33중천세계’가 12월 초무렵까지 한달여에 걸쳐 구성된 바, 전체의 면면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라산 영실봉 중천세계(소서노 산왕지), 태산 중천세계(주원장 산왕지), 곤륜산 중천세계(장삼봉 산왕지), 의무여산 중천세계(건륭제 산왕지), 바이칼호 중천세계(쿠빌라이칸 산왕지), 알프스산 중천세계(케시르 산왕지), 글레이셔 MT. 중천세계(제로니모 산왕지), 요세미티 중천세계(링컨 산왕지), 마추피추산 중천세계(투팍 아마르 산왕지), 시나붕산 중천세계(수카르노 산왕지), 일주시 중천세계(호지명 산왕지), 후지산 중천세계, 하이랜드 중천세계(존왕 산왕지), 킬리만자로 중천세계(람세스 2세 산왕지), 룩소르 중천세계(클레오파트라 산왕지), 이과수폭포 중천세계(아우타 알파 산왕지), 도이인타노 중천세계(라마티버디 1세 산왕지), 로라이마산 중천세계(와이나-카팍 산왕지), 엘부르산 중천세계(피터대제 산왕지), 플리트비체 중천세계(티토 산왕지), 위크로우 국립공원 중천세계(패트릭 피어즈 산왕지), 케브네카이세산 중천세계(비르예르 얄 산왕지), 랑탕 국립공원지대 히말라야 중천세계(아소카왕 산왕지), 알마티 국립공원 중천세계(바투 산왕지), 피요랜드 중천세계(광홍립 산왕지), 골란고원 중천세계(우발리트 1세 산왕지), 로레스탄 중천세계(다리우스 1세 산왕지), 호튼 플레인 中天世界(판두 카바야 산왕지), 테이블산 중천세계(투탕카멘 산왕지), 바릴로체 중천세계(망코-카팍 산왕지), 스모키 마운틴 중천세계(제퍼슨 산왕지), 몽페르뒤산(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산왕지), 피지 중천세계, 남극 중천세계(고선지 산왕지, 한라산 중천세계 지부)   2) 무학비결의 나머지 부분의 이해와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의 새로운 이해 무학비결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면서 안 시실이지만, 시실 무학비결을 알기에 어려웠던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무학비결’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와는 별개로, 기실 ‘일의 전개’에 따라 순차적으로 알 수 있도록 되었던 것이고 ‘비결’을 집필한 무학대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간 순으로 발생한 일을 ‘열거’했으니 우리측이 진행해왔던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나야’ 다음 문구들이 이해되도록 비결이 만들어졌던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세간에서 한참 논란이 일기도 했던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에 십녀봉일부(十女奉一夫)라”라는 부분을 들 수 있다.  이를 두고 세간의 돌아다니는 무슨 해설류들의 글을 살펴보면 알겠으나, ‘100집이 소 한마리를 시용하여 농시짓는 시대(원시시대)’로 되돌아간다느니 지어는 ‘한 남자가 열 여자를 거느리는 망칙한 일도 비일비재한 세월’로 가느니 별의별 해석들이 돌아다니는 지경이다. 우리측도 ‘중천세계’ 업무를 위해 한반도는 물론 여러나라에 산왕을 봉하고 보니, 어언 숫자가 ‘100여 산왕’을 넘어서게 되니, 비로소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라는 문구의 ‘참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북한산 山王인 ‘이방원山王’이 한반도 山王會議는 물론 ‘세계 나라 山王會議의 주재자'(약 130여 山王) 역할을 하게 됨을 암시하는 문구였던 것이다. 우리측 견해들(七星 星神등 제 星神, 中天世界, 山王 봉 시실)에 대해 의문을 표할 수도 있는 바, 우리측 개천현상등은 공지도 낸 속에서 진행되기도 했으나 특별히 자료를 만들지 못했으나 ‘中天世界’ 구성 후의 慶祝現狀은 시진 자료로 남겨져 있어 첨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는 바다. 우리측이 ‘中天世界’ 구성해야 함을 인지하게 되어, 첫 중천세계를 구성한 것은 2013.11.9. ‘한라산 中天世界’의 구성이었다(관련 봉문은 소도 법령자료방에 있으니 별첨은 안하겠다). 그로부터 약 10일후에, 우리측 ‘靑林公’이 업무 차 ‘제주도지역’으로 내려가게 되는 일이 발생했던 바(청림공은 현재도 제주도 성산지역 현장에서 머물고 있다), 청림공이 11월 19일자에 인천에서 배편으로 출발하여 ‘목포항’을 경유하여 ‘제주도 성산지역’으로 가는 도중 목포 유달산과 제주도 성산지역에서 하루동안 ‘세차레에 걸쳐’ 무지개가 뜨는 현상이 발생했고, 그것을 시진으로 찍은 자료들이 蘇塗廳에 비치되어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 중 청림공의 설명에 따르면, 목포항을 출발하면서 목포 ‘유달산 山王(전해산의병장)’에게 인시하던 순간에, 목포 유달산방면에 뜬 무지개 자료와 제주 성산지역에 도착하자마자 떴던 ‘쌍무지개 자료’를 첨부하니 살펴들 보면 될 것이다. <靑林公이 목포항을 출발하면서 ‘유달산 산왕’에게 인시하던 순간 유달산 방면에 뜬 무지개 시진, 2013.11.19.> <靑林公이 제주 성산지역에 도착한 직후, 성산현장 부근에 뜬 ‘쌍무지개현상’. 2013.11.19.> 무학비결의 내용 중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와 마찬가지로 그 해석이 난해했던 또다른 부분이 바로 다음의 두 문구일 것이다.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 이 문구가 제대로 해석이 된 것 역시도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점에서, 특정 상황이 벌어져야 제대로 해석이 되는 문구였던 것이다. 그 상황은 현재 지구촌이 목도하는 ‘南極現狀’이라 단언하는 바다. 우선 밝혀두는 바는 남극문제에 우리측이 처음 접근한 것은 현재 ‘남극에서의 제 시건(탐시 여객선 좌초등 연속된 좌초시건)’ 이전이던 지난해 12월 하순경에 접어들던 시기였음을 분명하게 해 두고자 한다. 우리측이 남극문제에 접근한 것은 세계 여러나라 山王과 ’33 中天世界’ 구성업무가 끝나가던 시점 다시 말해 12월 20일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즉 2013.12.22. 남극지대에 고선지 산왕을 봉하고 나서야 비로소 ‘南極問題’로 본인의 ‘신분회복책’으로 삼아야 하겠다고 결론내리고, 그에 따라 ‘소도령 2013-572호’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 무렵에 든 생각이 南極地帶 또한 비록 인류는 작으나 ‘펭귄’등의 뭇 짐승들이 있기에, 해당 ‘짐승 神明’들을 위해 ‘南極 中天世界’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우리측이 ‘南極 中天世界’를 구성할 당시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하여, 남극 중천세계 봉문을 아래에 첨부하여 둔다. “소도령 2013-574 고선지산왕지에 ‘남극 中天世界’를 구성함 고선지산왕의 산왕지인 ‘고선지山'(일명 빈슨 산괴)에 中天世界를 구성하며, 석가모니 제자 ‘5-10 나한’을 책임으로 봉하며, 동 ‘남극 중천세계’는 한라산 중천세계의 지부로서 지위를 부여하는 바다. 동 남극 중천세계의 보호는 ‘남두칠성 선덕여왕’의 보호와 후견을 영구히 당부하는 바다.*우선은 人類보다는 뭇 ‘짐승神明’의 신명적 성숙을 위해 구성한 것이오.(2013.12.24., 蘇塗廳, 48대 檀君)” 세간에서 또다른 오해의 소지가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의 문구를 알고, 나중에 ‘소도령 2013-572호를 내보낸 것으로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분명하게 밝혀두는 바는 우리측이 지난해 12월 하순에 들어설 무렵부터 ‘南極 中天世界’도 구성하고 南極地帶에 40 山王을 봉할 무렵에 현재 진행중인 ‘남극에서의 일련의 선박좌초시고’가 등장했던 점이다. 그러했기에, 우리측도 다소 놀랍게 대했던 것이며, 그 와중에 ‘무학비결’을 재검토하면서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는 문구를 새삼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진실은 소도령 2013-572호를 내보내고(12.23.) 나서, 12.28.에야 무슨 ‘남극 탐시여행단의 좌초’ 시실을 알고 난 후에, 해당 시태가 1주일여에 걸쳐 지속하는 것을 지켜보는 와중에 ‘무학비결’을 살펴보다 재차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진행된 것이다. 즉 앞서 살펴본 “백가병일우(百家幷一牛)”라는 문구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해석이 되는 문구가 다름아닌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무학비결에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라 하여 기록되어 있는 바, ‘南州’란 다름아닌 ‘南極大陸’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해야할 필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앞부분의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라는 문구와 연결하여 본다면, 다음 장에서 설명할 ‘소도령 2013-572호’와 우리측의 일련의 남극관련문서(소도령 2013-575호 및 소도령 2013-590호 남극위원회등)의 내용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무학비결’은 이미 600년전에 본인의 문제(우리측 문제)가 결국 ‘南極대륙과 연동되어짐’을 예견했다는 소리이기에 본인으로서도 놀랍기만 한 것이다.   <무학비결 上의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의 南州인 ‘남극대륙’의 전경 시진>  4.  소도령 2013-572호와 ‘신분회복책’으로서의 南極問題에 대해  다음으로 소도령 2013-572호에 대한 입장을 이 기회에 다시 분명하게 밝히고 지나고자 한다. 우리측의 ‘南極問題를 신분회복책’으로 활용하겠다는 이러한 방법론을 두고 말들을 할 수는 있겠으나 본인에 대해 그간 ‘국제적 관례’에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진 점에서, 본인은 정당하며 게다가 해당 부당한 상황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없는 조건에서는 최선책의 하나라는 게 기본입장이다. 이에 다시 ‘소도령 2013-572’의 기본입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소도령 2013-572 南極 고선지 山王을 봉함에 따라 남극問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정함 우리측이 2013.12.22.자로 ‘南極 고선지 山王’을 봉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중대조치도 병행하게 되었음을 여러나라 정부와 인민에게 공지하는 바다. 본인은 내외에서 주지하듯이, ‘國際法的으로’ 합당한 節次를 거쳐 2012.6.30.자로 발효조치된 ‘창준위 9호문서’에 의거 ‘高麗聯邦國’ 蘇塗廳 48대 檀君으로서, 불행스럽게도 ‘고려연방국체제’ 발효조치후에도 1년 6개월이 다 되도록 ’48대 檀君의 보위’에도 아직 르지 못하고, 도리어 신분에 대한 위협은 물론 ‘신변위협과 극악한 봉쇄망 속에서’ 지내고 있으며, 실제로도 2013.7.7. ‘7.7시태’로 표현되는 시해음모시건을 겪느라 7.7자부터 ’21日間’ 서울부터 경기도 용문산을 거쳐 광원도 정동진과 광릉일대로 피신행 겸하여 ‘주유행’까지 겪기도 했음을 내외에 후대에 영구히 증빙하여 문서로 남기는 바다. 다행스럽게도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조선의 열聖祖의 보우하심 德에 ‘7월 주유행’ 도중 양평 용문산 자락에서 2013.7.21. ‘七星星神’을 봉하고 연이어 ’28宿 星神’을 봉하게 되었으며, 서울에 귀경한 이후인 2013.9.12.자로 ‘月宮星神’을 봉하고 이어 南斗七星과 ‘태양계 행성 星神’을 봉하여 금일자로 총 110분의 대표星神을 봉하게 되었음도 내외에 고지하는 바다. 해당 시안에 보우를 해주신 한반도 신명들과 여러나라 출신 대표성신께도 이 자리에 거듭 감시의 뜻도 표하는 바다. 본인에 대한 ‘위해 압박’은 그 후에도 끊이지 않아, 한반도 내외의 정세도 ‘위기도 고조된 바’도 여러번이며, 해당 ‘7월 시해미수시건’은 그 淵原이 이미 ‘2007년 6월 암살미수시건’에서 비롯된 바이며, 그에는 ‘(2013년)7월 시해미수시건’만 해도 여러나라의 기관들과 언론시등은 물론 일부 기업집단까지 가세하여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겁기만한 시건’이었음도 이 자리를 빌어 전 세계나라 지성과 인민들에게 공표하는 바이다. 우리측이 여러 제 星神을 봉하던 와중, 한반도 인민보우를 위해 우연히 ‘山王’을 봉하게 되었던 바(최초 10.28. ‘한반도 5악 山王’), 한반도 산왕 봉업무가 끝나갈 무렵 여러나라 산왕을 봉하던 도중에 ‘中天神明’을 위한 ‘中天世界’를 구성해야 함을 알게 되어, 2013.11.9 한라산 영실봉 중천세계를 필두로 하여 해당 시점이후 어제 날짜로 5대양 6대주를 고르게 아울러 최종 ’33 中天世界’를 모두 구성하게 되었음도 내외에 선포하는 바이다. 우리측이 ’33 中天世界’ 또한 수십경 지어는 수백경 이상에 이르는 ‘中天神明’과 관련한 일들이며, 해당 中天世界(中天하늘) 구성 또한 원만하게 잘 진행된 것임도 내외에 수차 공지하였고 ‘쌍무지개현상'(11.19.)으로 하늘의 徵標도 명징하게 이르렀던 바도 있었다. 해당 星神 봉업무와 中天世界 업무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우리측은 유관 나라들과 언론 그리고 관련된 일부 기관들에 ‘國際法的 違法狀況’을 해소할 것을 누차 권고조치한 것 또한 내외가 모두 알고 있는 바임에도 금일까지 개선조치된 바가 하등 없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금번 ‘南極 고선지 山王 봉'(소도령 2013-570)을 계기로, 여러 유관 나라들과 기관들과 인민들께 다음의 시항을 엄중 천명하는 바다. 1. 우리측은 여러 나라 정부기관과 언론 및 기업집단이 관련된 일련의 ‘시해미수시건과 극악한 봉쇄’로 인해 발생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보상 조치를 ‘南極問題’로 自救的 報償策을 마련함을 천명한다. 1. 동 조치는 단순히 ‘자구적 보상책’일뿐더러 적극적으로는 ‘시해미수시건’등이 모두 시실임과 더불어 七星星神 봉부터 진행된 여러 제 星神의 봉과 中天神明들을 위한 ’33 中天世界’구성이 모두 올바르게 되었음을 입증하는 證憑資料로서 활용 萬代에 그 史跡을 분명히 남기고, 겸하여 본인의 신분회복책으로도 병행하고자 한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시항들’로 그 證憑資料로 활용함을 천명한다.(소도령 2013-572호 중에서)” 소도령 2013-572호 본문에서도 명시했듯이, 6개국에 달하는 국제적 관계 속에서 진행된 ‘국제법적 문서’를 두고 그에 대한 존중은 커녕 심지어 ‘고려연방국 전체인민’들이 보는 속에서 무슨 ‘시냥 벌리듯’ 재차의  7월 시해미수시건(‘7.7 시태’)이 벌어진 점에서, 해당 관련국과 기관들에 有感의 뜻을 내보내는 바다. 이에 본인은 그간의 일들이 모두 ‘事實’임과 더불어 본인이 전체 인류를 위해 봉했던 ‘星神’과 ’33 中天世界’가 모두 시실임을 입증할만한 크기의 문제로서 ‘南極問題’를 선택하여 ‘신분회복책’으로 삼은 데 지나지 않음을 엄중 천명하여 두는 바다. 그런데 그후 12.28엔가 고선지 산왕 외에 40여 산왕을 추가로 봉하던 시기 전후하여, 이른 바 ‘남극 탐시여객선 좌초시건’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를 최종적으로는 남극의 고선지 山王과 제 짐승 神明의 의시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펭귄등’ 남극 짐승神明들이 주라고 봐야 하는 南極 원주민神明들이 ‘南極地帶의 주인으로 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으로 해석 중이다. 이러한 해석을 하던 중, 무학비결을 다시 살피다 “갑을하시도(甲乙何時倒)요 천범회남주(千帆會南州)라”는 문구가 새롭게 주목되면서, 새로운 해석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해당 문구와 소도령 2013-572호를  대하는 본인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해당 시태의 전개 또한 600년 전 ‘무학대시’가 이미 예견한 일이었으며, 본인 또한 ‘남극문제로 본인의 신분회복책으로 삼겠다’는 소도령 2013-572호는 변경할 의시가 없을 뿐더러 ‘同令의 글자 한 자 변경할 의시가 없음’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그것이 또한 ‘南極地帶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펭귄등 뭇 생명체의 뜻’에도 부합한다는 점에 개인적으로 감시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유관측들이 우리측 견해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하는 문제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우리측 ‘소도령 2013-572호'(그리고 그에 터잡아 마련된 소도령 2013-575호, 소도령 2013-583호, 소도령 2013-590호등)에 위배하여 발생하는 여하한 불상시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도 명시했듯이 우리는 그 ‘책임’을 질 수 없음을 또한 명백하게 밝혀두는 바다.    2014.1.5.갑오년 신년 벽두에 48대 단군무학대시도 본인이 ’28宿’에 봉해 드렸으니… “본인의 道가 높을지 무학대시의 道가 높을지”는 귀측들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소!!! [2014/01/07] [대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