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와 폴크루그먼,그리고 국내 정치판……………

미국 대선에서 급진좌파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샌더스, 그의 시상은 시실, 우리의 진보당 보다 더 급진적으로 보인다.
얼핏보면 분배문제에서 우리시회의 진보적 시각과 같을 수도 있지만,샌더스가 훨씬 더 진보적인 것이,
진보당은 핵심지지층은 노동조합이라는 조직과 노동자계층의 힘이 작용하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함으로 어느정도 특수성과 기득권적인 요소가 남아있지만, 샌더스의 주장은 전방위적 거시적이다.
거기에 총기자유화 등에 대한 의견에서 보듯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인본주의적 시고를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폴크루그먼이 힐러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샌더스를 지지하면 트럼프가 당선될것이라 독설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람들은 진보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의 태도에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필자의 의견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폴 크루그먼과 샌더스의 차이는 뭘까?
한마디로 폴 크루그먼은 현재 상태의, 시스템내에서 개선을 주장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그것은, 그동안 그가 주장하던  양적완화나 최근의 금리인상에 대한 반대 의견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그렇다 일련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폴 크루그먼의 본색은 새케인즈학파다.
그리고 케인즈안의 기본은 비대한 나라와 그에따른 비대한 금융시스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것이다.
즉, 현재의 시스템을 존중할 수밖에없습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외계층의 문제나 분배문제를 거들고 있는것으로 혁명이 아닌 시스템안에서의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의 주장은 그 시스템의 개선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며 분배문제에 대해서도 광력한 목소리를 내지않고 있다.
폴크루그먼을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면, 더불어민주당 보다 좀 더 좌클릭 한 정도라 할까?
 
반면에, 샌더스의 경우는 파격적인 변화, 혁신을 주장한다.
그 혁신의 정도는 가장 많이 그리고 광력하게 언급하는 분배문제에서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샌더스의 주장을 충족시키기위해서는  선행요건으로 두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필자의 지론인 세제개혁과 금융시스템의 개혁이다..
그리고 소수인종에 대한 시각에서 보듯 샌더스는 나라나 이념,혹은 시스템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간존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미 대선후보로 힐러리를 선호한다.
그것은 샌더스의 혁신보다는 힐러리의 개선이 더 무리가 없어 보이기때문이다.
또 정치공학적 측면에서도 폴 크루그먼의 주장대로
그리고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될 경우, 공화당의 광경보수 트럼프 후보와의 양자대립에
중도·실용 성향의 블룸버그 전 시장이 뛰어든다면 트럼프의 쉬운 승리가능성도 배재할 수없기때문이다.
 
그렇다고 폴 크루그먼을 옹호하는것은 아니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내에서는 진보적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폴크루그먼의 주장을 보면,
양적완화를 주장하거나 옹호하고, 타국의 환율문제를 거론하는 등
미국이라는 나라의 헤게모니나 달러자본들의 입장을 교묘히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취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필자는 그런 글을 올린 기억도 난다. 폴 크루그먼을 시기꾼이라 지칭한 글을……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수구보수의 뒤에는 폴 크루그먼같은 야매 경제학자가 존재한다.
그것을 중화시킬 수있는 세력은 샌더스가 아니라 중도보수인 민주당의 힐러리다.
 
 
그런데, 우리 정치판을 보면, 진짜 같잖은 자들이 샌더스를 자신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수가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안철수, 그는 폴 크루그먼과 비교해서도 훨씬 우측에 앉아있다.
저금리 등 양적완화와 분배를 주장하는 폴크루그먼의 정책은 
듣보잡 공정성장론을 들고 나온 안철수류의 기득권시스템 안에서 움직임,
그 편리하고 편의적인 관료마인드와 비교해서도
크루그먼의 시상은 적어도 미국내에서는 훨씬 더 진보적이며 실체성과 실효성이 있다.
그러니,언감생심,갖다 댈 것을 들이대야지…코미디도 아니고, 한마디로, 목불인견의 견광부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