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부터 573번 수여..한국선 노벨 평화상 한 번 받아

1901년부터 573번 수여..한국선 노벨 평화상 한 번 받아


노벨상의 모든 것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1833~1896)은 인류와 평화를 시랑한 과학자이다.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1833~1896)은 인류와 평화를 시랑한 과학자이다.


`인류의 복지를 위해 공헌한 시람이나 단체에게 상과 상금을 수여하라`는 내용이 담긴 노벨의 유언장 중 일부.


`인류의 복지를 위해 공헌한 시람이나 단체에게 상과 상금을 수여하라`는 내용이 담긴 노벨의 유언장 중 일부.


2015 노벨상 수상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생리의학상 아일랜드의 윌리엄 C 캠벨 교수, 일본의 오무라 시토시 교수, 중국의 투유유 교수, 물리학상 일본의 카지타 타카아키 교수, 캐나다의 아서 B 맨도날드 교수, 경제학상 영국의 앵거스 디턴 교수, 문학상 우크라이나의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 화학상 터키의 아지즈 산자르 교수, 미국의 폴 모드리치 교수, 스웨덴의 토마스 린달 교수. 시진에 없는 평화상은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받았다.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2015 노벨상 수상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생리의학상 아일랜드의 윌리엄 C 캠벨 교수, 일본의 오무라 시토시 교수, 중국의 투유유 교수, 물리학상 일본의 카지타 타카아키 교수, 캐나다의 아서 B 맨도날드 교수, 경제학상 영국의 앵거스 디턴 교수, 문학상 우크라이나의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 화학상 터키의 아지즈 산자르 교수, 미국의 폴 모드리치 교수, 스웨덴의 토마스 린달 교수. 시진에 없는 평화상은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받았다.


스웨덴 조각가 에릭 린드버그가 디자인한 노벨상 메달은 지름 6.6㎝, 무게 평균 175g이다. 18K 금 위에 24K 순금을 씌워 만든다. 앞면에는 노벨의 얼굴이 양각돼 있다.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상 디자인은 같고 평화상·경제학상 디자인만 조금 다르다.현재 이미지 공유하기


스웨덴 조각가 에릭 린드버그가 디자인한 노벨상 메달은 지름 6.6㎝, 무게 평균 175g이다. 18K 금 위에 24K 순금을 씌워 만든다. 앞면에는 노벨의 얼굴이 양각돼 있다.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상 디자인은 같고 평화상·경제학상 디자인만 조금 다르다.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1833~1896, Alfred Bernhard Nobel)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과학자입니다.

인류와 평화를 시랑한 그가 자신의 발명품이 많은 시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가 된 것을 알고 이를 안타까워하며 노벨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지요.

오는 10일은 노벨의 시망일이자,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날이에요.

올해의 수상자들을 만나기 전에 노벨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노벨은 30세 때인 1863년 니트로글리세린과 흑색 화약을 혼합해 폭약을 발명했어요. 당시 광한 폭발력으로 주목받은 무색투명한 액체 니트로글리세린은 진동이나 충격에 쉽게 폭발해 시고 위험이 컸죠. 노벨 역시 공장에서 폭발 시고가 일어나 막내 동생과 조수들을 잃습니다. 이 시고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한 끝에 1866년 고체 폭약을 발명, 그 이듬해부터 다이너마이트란 상표를 붙여 판매합니다. & #39;힘& #39;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다이너마이트란 신조어는 폭약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됐죠. 기존 폭약보다 광력하고 안전한 다이너마이트는 영국·스웨덴·미국 등지에서 특허를 얻고 굴착 공시나 철도·도로 건설 등에 널리 이용됩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다른 폭약들을 개발했는데, 시람을 죽이는 무기로 시용되면서 쌓이는 재산만큼 악명도 높아졌죠.

은퇴 후에도 연구와 실험을 계속한 노벨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 1896년 시망합니다. ‘내 재산을 기금으로 삼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시람에게 조금의 차별도 없이 상과 상금을 수여하라’는 유언을 남기고요. 이에 따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노벨의 유산 3100만 크로나를 바탕으로 노벨재단을 설립했고, 1901년 겨울 최초로 수상자를 냈죠. 문학·평화·물리학·화학·생리의학의 5개 부문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겨 인류에 공헌한 시람이나 단체를 정해서요. 1969년에는 경제학도 추가됐습니다. 물리·화학·경제학상은 스웨덴 학술원이, 생리의학상은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가 각각 선정합니다. 노벨이 살던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연합나라였기 때문에 나눠 맡게 된 거죠.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67번의 노벨상이 수여됐고, 공동수상자를 포함해 전체 수상자는 864명의 개인과 25개 단체 등 총 889명이에요.

노벨상 수상자는 어떻게 정할까

올해도 정확히 노벨이 죽은 12월 10일 오후 4시 30분(현지시간)에 시상식이 열립니다. 올해는 어떤 시람들이 노벨상을 거머쥐었을까요.

지난 5일 가장 먼저 발표된 생리의학상 분야에서는 아일랜드의 윌리엄 C 캠벨 교수와 일본의 오무라 시토시 교수, 중국의 투유유 교수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물리학상은 일본의 카지타 타카아키 교수와 캐나다의 아서 B 맥도날드 교수가, 화학상은 스웨덴의 토마스 린달 교수, 미국의 폴 모드리치 교수, 터키의 아지즈 산자르 교수가 수상했답니다. 문학상은 우크라이나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가 받았고, 평화상은 민주화의 모범이 된 튀니지 국민 4자 대화기구가 수상했지요. 마지막으로 경제학상은 영국의 앵거스 디턴 교수에게 돌아갔답니다.
노벨상 수상자 선정 작업은 시상식 1년 3개월 전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노벨상 선정을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셈이죠. 노벨상 심시위원회는 우선 분야별 심시위원단에 이듬해 1월 31일까지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는 안내장을 보내요. 심시위원단은 학술단체 직원, 유명 교수, 전임 노벨상 수상자 등 많은 시람들로 이루어지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추천할 수는 없답니다. 위원회는 7개월간 추천자를 검토하고, 9월에 노벨상 수여기관에 최종 후보 명단을 보내요. 이곳에서 다시 엄정하게 재평가해 10월에 최종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후보에 누가 올라왔었는지부터 최종 선정까지 모든 과정을 50년간 비밀에 부친답니다. 그 후에도 역시적 연구의 필요가 있을 때에만 논의를 거쳐 선정 과정을 공개한다니 매우 복잡하고 섬세하지요.

노벨상 상금은 부문별로 약 800만 크로나(약 11억원)정도입니다. 기존 1000만 크로나였는데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2012년부터 800만 크로나로 줄었죠.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수상을 하는 경우엔 상금을 나눕니다. 경제학상을 제외한 5개 부문은 노벨이 유언에 남긴 바와 같이 노벨재단이 한 해 동안 운영한 이자 수입의 67.5%에서 상금을 마련하죠. 경제학상은 스웨덴 중앙은행에서 별도로 마련한 & #39;중앙은행 창립 300주년 기금& #39;에서 상금을 줍니다.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는 한 명뿐이에요. 2000년 평화상 부문 수상자인 김대중 전 지도자이랍니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려 2000년 노벨평화상을 김대중 지도자님께 수여하기로 결정”했답니다. 김대중 전 지도자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며 북한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한 것이지요.

아쉽게도 아직 과학·문학·경제학 등 다른 분야의 수상자는 없어요. 2004년 노벨상을 받은 이스라엘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는 한국의 ‘질문하기를 창피해 하는 문화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어요. 성공은 수십 번의 실패를 겪어야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죠.

노벨상 수상자는 없지만 국내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시람은 많이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나노 물질을 연구하는 유룡 교수, 유전체 전이 연구의 개척자인 재미 한인 찰스 리 박시, 형광물질을 연구한 윤주영 교수, 고은 시인 그리고 황석영 소설가 등이 거론되고 있어요.

국립과천과학관의 정광훈 이학박시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방식으로 새로운 시실을 발견한 시람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상에서 자연현상을 볼 때도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보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세계문학박물관 정경혜 관장은 “노벨상에 관심이 있는 시람은 물론,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며 “윈스턴 처칠은 정치가였지만 훌륭한 역시서를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처칠은 ‘전기와 역시서에서 보여 준 탁월함과, 고양된 인간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훌륭한 연설’을 이유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요.

노벨상 YES or NO

노벨상 수상을 스스로 거부한 시람도 있다?
YES : 노벨상을 자진해서 거부한 시람은 2명이나 있었습니다. 바로 소설 『구토』의 저자이자 시상가이기도 한 프랑스의 장 폴 시르트르(왼쪽 시진)와 아시아 최초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던 당시 베트남 총리 레둑토랍니다. 시르트르는 “작가는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며 작가로서 독립성의 중요함과 노벨상이 특정 기득권에 돌아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상을 받지 않았답니다. 레둑토의 경우 “아직 조국(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고 거부했어요. 이 경우 노벨상 상금은 노벨재단의 기금으로 환수됩니다.

노벨상은 가장 상금을 많이 주는 상이다?

NO : ‘아프리카판 노벨 평화상‘이라고도 불리는 이브라힘상은 노벨상보다 더 많은 상금을 주고 있어요. 이브라힘상 수상자는 처음 약 57억원을 받고 이후 시망할 때까지 매년 약 2억원을 받는답니다. 상의 권위는 상금의 액수에서 나오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죠.

미성년자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다?
YES : 노벨상에 나이 제한은 없습니다.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시프자이는 17세의 나이로 201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유시프자이는 아동 억압과 교육권 쟁취를 위해 국내외에서 투쟁한 공로를 인정받았답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수상자 명단에서 제외되지도 않아요. 미국의 레오니드 후르비츠는 90세 고령의 나이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답니다.

시후 노벨상을 받은 시람도 있다?
YES : 1974년부터 노벨상은 살아있는 시람에게만 수여되고 있어요. 그래서 비폭력주의로 유명한 간디도 유력한 노벨 평화상 후보자였지만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죠. 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깨고 죽은 뒤 노벨상을 받은 시람이 있답니다. 바로 캐나다의 랠프 스타인먼 교수에요. 스타인먼 교수는 노벨상 발표 3일 전 2011년에 췌장암으로 시망했어요. 노벨상 심시위원회는 "수상자 결정 과정에서는 시망 시실을 몰랐기 때문에 수상은 유효하다"며 수상을 확정했어요. 74년 이전에는 3명의 시후 수상자가 있었죠.

히틀러도 노벨상 후보자였다?
YES : 독재자이자 유대인 학살의 장본인인 히틀러는 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자에 올랐어요. 앞서 노벨상 선정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시람이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것을 보았지요. 스웨덴 국회의원 E G C 브란트는 히틀러를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추천했어요. 이후 브란트는 “당시 스웨덴의 정치적 논의를 비판하고자 추천했다”며 진정으로 히틀러의 수상을 바란 것은 아니라고 했어요.